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한라산 설경을 보고 싶었다. 순백의 백록담과 구상나무 숲 위의 흰 눈 그리고 멋진 상고대가 보고 싶었다.
2024년 연 초에 세 번의 한라산눈꽃산행을 계획하였으나 매번 비가 내려 산행 계획을 취소하여 마음 한 쪽에 서운하다가 연말에 한라산 등산을 하게 되었다.
그 사연인즉 며칠 전 식사모임 가던 중 J님이 한라산 산행을 하자고 요청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듯이 수락하여 즉시, 여행 계획을 짜고 2024.12.22. 밤기차로 여수엑스포항으로 갔다.
우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 거대한 골드스텔라호에 올라 5층 선실로 가서 자리를 잡았고 00:20 배는 출항하였다.
카페트 깔아진 마루방은 바닥이 차가워 잠을 청했으나 이리저리 뒤척거리게 하였다.
05:00경 집에서 아내가 정성껏 마련해준 찰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서 06:20 배에서 내려 어떤 산행팀과 합승 택시를 타고 성판악으로 출발하였다.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차량들이 바쁘게 제주 시내 도로들을 오간다.
성판악주차장은 이미 만 차가 된 것으로 공원에서 연락이 왔으며 택시 기사에 의하면 새벽 5시면 주차장은 만 차가 된다고 한다.
성판악 한라산탐방센터 앞에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산행 준비를 하고 떠나고 또 몰려오고 떠나는 광경이 장터를 방불하게 하였다.
우리도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 끈을 조이고 스패츠 신고 아이젠을 찼다.
07:00경 성판악 등산로 입구를 통과하면서 예약 인증을 하려하자 한시적으로 방문객 인원제한을 해제하였으니 그냥 입장하라는 직원의 말을 들으며 단단하게 쌓인 눈길에 스틱을 꽂으며 산행을 시작하였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으나 하얀 눈길을 따라 수많은 등산객들과 함께 저벅저벅 걸었다. 탐방로는 경사가 완만하여 걸을 만 하였다.
차차 어둠이 걷히고 시야가 확연히 들어난 숲은 하얀 눈 속에 잠자는 듯 고요하였다.
앙상한 활엽수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단채로 얼어버린 굴거리나무가 침묵을 지키고 울창한 삼나무 숲길이 이어졌고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쑥밭대피소에는 잠시 쉬는 등산객들과 화장실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제법 경사진 등산로나 데크계단길이나 돌밭길이나 하얀 눈이 두툼하게 쌓이고 다져져 비스듬한 길이 되어 눈길 걷기가 어렵지 않으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계속하여 땀이 남으로 가다가 쉬면 몸이 으스스 차가워졌다.
사라오름 안내판이 나타났지만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서 탐방을 포기하고 계속 전진하였다.
이제부터는 등산로 경사가 제법 있어서 조금 올라가다 쉬기를 반복하였지만 햇빛이 따뜻하게 비치고 파란 하늘이 선명하게 보여 눈부신 겨울 숲 경치를 이루어 눈이 호사한다.
갑자기 하얀 눈을 뒤집어쓴 한라산이 보이자 올라가던 등산객들이 와! 하고 탄성을 지른다.
10:10 진달래밭대피소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등산객들로 북적거렸고 컵라면이나 간식 등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풍경들로 가득하였다.
우리는 간식을 꺼내 조금 먹고 밖으로 나왔지만 벤치나 쉴만한 장소에는 등산객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냥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울창한 구상나무 숲길을 지나는 탐방로는 경사가 급하여 조금 올라가다 쉬기를 반복하게 하였다. 숨이 자꾸 차고 발걸음이 느려졌으며 배낭이 무겁게 느껴졌다.
고사목에 붙어있는 눈과 상고대 그리고 푸른 구상나무를 덮은 눈과 얼음, 발밑에 구름들이 둘러싼 환상적인 풍경이 참, 멋지고 아름답다.
이러한 겨울 풍경을 보려고 전국에서 몰려오는가 보다. 어떤 가족들은 어린이들을 데리고 같이 한라산 정상 산행을 하였고 또 학생들, 젊은 연인들, 중년으로 보이는 사람들, 노년으로 보이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겨울 산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한다.
어느덧 정상이 가까워진다.
스틱을 탐방로 옆 눈 속으로 집어넣으니 손잡이만 남고 쑥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1.2m쯤 눈이 쌓인 것 같다.
정상에는 백록담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으려고 대기하고 있는 긴 줄로 장난이 아니다.
12:30 ‘한라산백록담’ 글씨가 새겨진 나무 옆에서 사람과 글씨가 나오게 사진을 찍고 또 ‘백록담’ 표지석만 나오게 줄 선 그 옆에서 살짝 인증 사진을 찍었다.
제대로 줄서서 인증 사진을 찍으려면 두어 시간 걸릴지 모르기에 인증 사진 찍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정상 분화구에 하얀 눈이 덮여 있는 풍경을 담고 함께 산행한 장로님과 분화구를 배경으로 인증 사진도 찍고 바로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구상나무숲, 고사목에 붙어 있는 얼음과 눈, 저 멀리 산 아래를 덮은 구름들, 찬란한 햇빛, 파란 하늘빛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다.
급경사 내리막길 눈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쓰다 보니 허벅지가 아프다.
기다랗게 느껴지는 급경사 등산로를 로프와 스틱을 사용하며 조심스럽게 탐라계곡 용진각대피소자리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멋진 풍경이 눈에 보이면 어김없이 핸드폰카메라에 담았다.
용진각대피소 터를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자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등산로가 위험하게 이어졌다. 이미, 이곳을 통해 정상으로 가는 시간이 지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4:00 삼각봉대피소에 이르러 허기진 배를 영양갱과 간식으로 약간 채웠다.
차가운 영하의 날씨와 멈추어 서면 바람막이 속의 땀 때문에 몸이 추워서 가져간 찰밥으로 점심 먹는 것도 생략하였기에 배가 고팠다.
길고 지루한 하산 길은 관음사 가까이까지 눈길이었다.
16:50 마침내 관음사 입구에 도착하여 J님과 손을 잡고 다른 손은 들고서 한라산 백록담 완주 인증 사진을 찍으며 서로 기뻐하였다. 오늘 19.3km를 10시간 동안 걸었다.
우리는 택시로 제주동문재래시장으로 가서 대방어 회 2팩(10,000원/한팩)을 사서 근처 식당으로 가 회와 조기탕으로 만찬을 즐겼다.
근처 대동호텔 온돌방을 잡아 몸을 씻고 쉬었다.
12.24. 07:20 완도행 실버클라우드 배로 2:40 항해 끝에 완도항에 도착하자 택시로 터미널로 이동하여 직행버스를 타고 광주로 갔다.
13:50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에서 전주로 복귀하였다.
해마다 한라산등산 중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있다는 말을 관음사에서 탄 택시 기사가 말하여 준 것이 떠올랐다.
한라산여행을 허락하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며 그 분의 손으로 지으신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동행하며 고락과 기쁨을 나눈 진 장로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