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혼자가 되어 적적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외로움은 현대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이며 죽음으로 몰아가는 질병과 같은 단어이다.
외로움은 빠름과 개인주의와 나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종말과 같은 무서운 결과이다.
미국의 갤럽·메타가 140개국 이상에서 1년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4명 중 1명의 사람들이 외로움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고령층과 청년층 등 모든 연령대의 문제라는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려고 일, 향락, 마약, 오락, 게임, 고상한 취미생활, 반려견 등을 찾고 있다. 요즈음 저 출산 문제와 함께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는 현상도 근본적으로 외로움의 문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외로움은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일시적 육체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으로 결코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앞으로 세상은 더 빨라지는 ‘분초사회’ 속에서 더욱더 외로움을 느끼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근래에 겪었던 코로나시기 교회의 비대면 예배는 예배의 소중함뿐만 아니라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성도의 교제는 외로움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리움은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며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말한다.
고향 밖에 사는 이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鄕愁), 심해지면 향수병이 생긴다.
우리나라 실향민 마을은 이들의 대표적인 예이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 졸업한 학교의 선생님들도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대중가요 중 흘러간 노래가 나이 들은 세대에게 애창되어진다. 옛날의 통기타 가수들은 70대를 넘었지만 여전히 7080세대에게 인기가 많다. 그들이 부르는 포크송이나 외국 번역곡 등은 향수를 불러일으키어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그들의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이와 같이 그리움에 대한 대상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간절히 바라며 사모하는 대상을 만나는 것만이 그리움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하였다.
절망은 희망이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절망이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절망의 시작은 외로움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함께하여 주지 않는 상태, 실제 사람은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사람의 뻥 뚫린 마음은 조물주 하나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다. 외로움과 그리움의 고향은 하나님의 품으로 그 품안에 안길 때 해결된다.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그리움의 대상은 손수 만드신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을 사랑하시어 사람과 교제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사람들은 죄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가려고 한다.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 막는 죄의 담을 제거하시려고 십자가 위에 예수님을 못 박아 우리 대신 죽게 하심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主)로 영접하는 자에게 구원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외로움과 그리움은 종결된다.
그 분을 믿는 믿음과 사랑이 외로움과 그리움의 유일한 해결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