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갑자기

산애고 2022. 10. 6. 06:00

 

금년 여름은 태풍으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이상기후는 기상청이 예상하는 날씨를 종종 뛰어넘어 기상관측 신뢰도를 떨어뜨렸습니다. 그 영향으로 시간 당 강우량이 대대적인 기록을 갱신하면서 차량과 가옥침수, 전답공장침수, 인명피해 등의 막대한 재산과 생명을 앗아가는 재해(災害)가 발생하였습니다. 더위도 맹위(猛威)를 떨쳐 밤이면 창문을 열어놓고 실낱같은 바람이라도 애타게 기다리면서 잠을 설쳤습니다. 하루 빨리 더위가 물러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달력을 쳐다보았습니다. 입추가 지나고 광복절이 지나면서 밤 기온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풀 섶에서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언제 불어올까? 기다리면서 뜨거운 열기를 참아내곤 하였는데, 하루 밤 사이에 창문을 닫고 홑이불을 덮으면서 잠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계절의 변화(變化)는 꿈만 같습니다. 순식간에 다가온 초가을입니다.

 

그간 폭염(暴炎)으로 인하여 걷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었지만 이제, 산과 들을 걷습니다. 트래킹 코스에 여름 내 자란 풀이 도로변과 전답(田畓) 가장자리를 기세 좋게 덮고 있습니다. 무성한 잡초 속에 왕씀바귀가 용케도 자리를 잡고서 아는 체를 합니다. 아니 내가 그의 이름을 알았기에 이제 의미 있게 나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 이름을 모를 때는 토끼가 잘 먹는 풀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건강식에 좋은 쌈 식물로 보여 집니다. 씁쓰레한 쓴맛은 입맛을 돋우어 줍니다. 새파란 꽃잎을 활짝 벌리고서 하늘이 파래지기를 기다리는 닭의장풀 야생초가 새파란 잡초 색과 잘 어울립니다. 여름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길목에서 애처롭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정적(靜寂)을 깨웁니다. 어서 짝을 만나 후대를 전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목청을 한층 높여댑니다.

 

노랗게 변해가는 벼가 꽉 찬 들판은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조만간 황금빛 출렁이는 정점을 찍고 나면 콤바인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수확을 할 것입니다. 갑자기 고추잠자리가 눈앞에 나타나 먼저 길 위를 날아갑니다. 마치 길 안내를 하듯이 말입니다. 이내 싫증이 났는지 방향을 바꾸어 어디론지 날아갑니다. 길옆에는 참깨를 베어 한 묶음씩 열을 지어 세워 놓았습니다. 참깨 단 밑에 깔아 놓은 검은 색 비닐 위에 하얀 참깨가 떨어져 있습니다. 갑자기 푸드득 소리가 나서 멈칫하여 보니, 산비둘기 가족이 몰래 참깨를 훔쳐 먹다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가는 소리입니다. 나도 놀랐지만, 저도 놀랐을 것입니다. 길가에 심어 놓은 호박덩굴에 누런 호박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한동안 보지 못한 사이에 벌써 조그만 호박을 살찌워 누렇게 만든 역사가 대견(對見)해 보입니다. 밭가에 심어 놓은 대추나무에 연두색 대추가 주렁주렁 달려 익어가고 있습니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붙어있는 대봉시도 보입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제 몫을 다한 모습입니다. 빨간 고추가 재미나게 달려있는 밭을 돌자, 탱자나무 울타리에 새파란 탱자가 가득 달려있습니다. 한우를 키우는 축사 방목장에 누런 소들이 누워서 한가로이 되새김질을 하면서 살을 찌우고 있습니다.

오늘 산책길에 만난 친구들 모습이 그 전과 같지 않고 갑자기 변해버렸습니다. ! 이것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만물을 붙들고 역사(歷史)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하나님의 솜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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