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열매 솎아내는 아픔

산애고 2022. 9. 30. 06:00

 

좋은 생각월간지에 복숭아를 솎으며란 배한봉님의 시()가 실렸습니다.

 

열매를 솎아보면 알지

버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 처음엔

열매 많이 다는 것이 그저 좋은 것인 줄 알고

아니, 그 주렁주렁 열린 열매 아까워

제대로 솎지 못했네.

 

한 해 실농(失農)하고서야 솎는 일이

버리는 일이 아니라 과정이란 걸 알았네.

 

삶도, 사랑도 첫 마음 잘 솎아야

좋은 열매 얻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네.

 

나무는 제 살점 떼어 내는 일이니 아파하겠지만

굵게 잘 자라고

부모님 같은 손길로 열매를 솎는 5월 아침

세상살이 내 마음 솎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알았네.

 

인생살이가 많이 가지면 복 인줄 알고 그저 움켜쥐려고만 했습니다. 굳은 땅에 물 고인다는 것만 알고 아끼며 절약하는 꼼생이 노릇을 했습니다. 남들이 가진 재물과 명예 그리고 권력이 부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성결한 신앙생활을 지향하였으나 또 한편은 먹고사는 평범한 생활에서 좀 더 여유를 가진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주어진 틀 속에서 살았습니다. 때로는 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울타리 안에서 사는 것이 참 행복임을 조금씩 알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울타리입니다. 드라마틱한 삶에 열광하고 동경(憧憬)하는 이 세대사람의 기준에서 본다면 덤덤하고 재미없어 눈길조차 외면하는 삶입니다. 꽃피는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기 저기 여행하는 여유를 자랑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에는 매여진 삶이 허락하질 않습니다. 주일이 되면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합니다. 생활 속에 기도와 말씀이 살아있게 하려면 매일 하나님과 대면(對面)하여야 합니다. 멍에를 멘 삶입니다. 단지 주중에 쉬는 날이 있으면 평일에 잠깐 아내와 여행을 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늦어도 토요일에는 주일날을 위하여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매임이 축복이요, 나를 세상에서 지켜준 보호막이었습니다.

 

과일 나무는 꽃이 피어 수정(受精)되면 다 열매를 맺습니다.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충실한 열매를 위해서는 원하는 열매를 제외한 열매를 솎아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매 크기가 작고 쉽게 병에 걸리며 결국 소출이 아주 적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출생과 성장 그리고 결혼의 과정을 통하여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 명예, 쾌락, 지식, 권세 등 많은 것이 주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 지켜가려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세상이 귀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할 때도 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는 성경 말씀은 오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에 새겨져 열매 솎아내는 아픔을 이겨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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