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生鮮)은 ‘말리거나 절이지 아니한 물고기’를 말합니다. 어시장은 생선을 구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립니다. 요즈음 같이 냉동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때에는 생선을 구입할 시 눈을 먼저 봅니다. 눈이 생생하면 잡은 지 오래되지 않는 생선이고, 눈이 흐릿하면 잡은 지 오래된 상한 생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도 어떤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가면 담당의사가 먼저 눈을 까발려 보는 것을 TV에서 보았습니다. 정신이 혼미한 사람은 눈에 총기(聰氣)가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예 눈을 감습니다. ‘눈은 마음의 등불’ 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의 총기가 죽었거나 살아있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도 되지만 그 사람의 활력의 정도와 꿈의 높낮이도 추정하는 근거(根據)가 된다는 말씀도 되겠습니다.
기분(氣分)은 때와 환경에 따라 많이 좌우됩니다. 몸이 많이 피곤할 때는 잠을 푹 자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한 운동, 취미생활로 활력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꾸중을 듣거나 좋지 못한 사고가 발생하거나 물질의 손해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반대로 칭찬을 듣거나 경사가 생기거나 수중에 돈이 생기면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소유와 환경에 따라 유쾌한 감정과 불쾌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기분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생기(生氣)는 살리는 기운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살아있는 생령이 되었다.’라고 성경은 창세기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구별은 숨을 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먼저 달려 있습니다. 즉 코에 숨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씀이요, 기운(氣運)이 있느냐 기진(氣盡)하였느냐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기운이 있으면 몸에 활기가 넘칩니다. 그러나 기운이 없으면 사람이 시들시들합니다. 생기가 없습니다. 기쁨이 사람에게 있으면 얼굴은 환해집니다. 타인이 금방 알아차리고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라고 먼저 묻습니다. 왜냐하면 기가 뿜어져 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사람의 심령으로부터 솟아납니다. 마치 땅속에서 샘물이 분출되듯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범인(凡人)이 가지는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기분보다 훨씬 고차원적 신앙의 산물입니다.
기력(氣力)은 ‘정신과 육체의 힘’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힘의 시작과 끝은 생기입니다. 즉 기력의 근원(根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커다란 사건을 만나게 되면 절망하게 되고 더 심하면 기절(氣絶)합니다. 기가 통하지 않고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너무 상심하면 사람들이 ‘기가 막힌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나 희망이 생기면 정신이 돌아오고 생기가 돌아옵니다. 만민의 구주(救主)이신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만이 선포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십니다. 그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생기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다 살아납니다. 살아난 자들은 다 하나님을 찬송(讚頌)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노래 찬송은 기쁨을 솟아나게 하는 샘물입니다. 찬송하는 자의 심령은 기쁨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생기로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