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5월이 오면

산애고 2022. 5. 24. 06:00

 

어린이의 사랑스런 모습을 닮은 오월(五月)이 오면, 내 가슴은 설레 임으로 가득합니다. 순진한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고사리같이 여린 손과 보드랍고 연한 살결처럼 조그만 한 어린잎과 사랑스런 연두빛깔로 다가서는 신록(新綠)은 너무나 가슴을 뛰게 합니다. 겨울동안 매서운 삭풍(朔風)과 추위 그리고 가끔씩 쌓이는 하얀 눈 이불은 견디기 힘든 고독과 인내의 연속이었지만 지난 가을, 창조주가 내려주신 새봄의 설계와 부활의 약속은 어김이 없습니다.

 

겨울동안 땅속 아래에서 숨죽이며 기다려온 온갖 풀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자라는 모습은 너무나 신기합니다. 사람들은 시샘하는 봄추위에 떨었지만 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명을 밖으로 터뜨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새싹을 시샘하는 추위도, 매서운 바람도, 흩날리며 쌓이는 눈발도 조물주가 명령하신 봄의 행진(行進)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새싹은 거침없이 쑥쑥 자라고 이내 꽃망울을 피워댑니다. 제법 높은 산에 사는 나무 중에서는 생강나무가 먼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릴 때면 동네 울타리나 도시의 정원 등에서는 산수유나무가 덩달아 노란 꽃망울로 미소 지으며, 야산의 진달래가 첨병(尖兵)의 역할을 맡아 핑크빛 꽃잎을 내놓고 봄바람에 그 소식을 온 사방에 전합니다.

 

봄 들판에 나서면 겨울 내내 추위에 떨며 웅크렸던 보리와 밀이 어느덧 훌쩍 자라서 이삭을 내밀고 불어오는 바람에 풋 내음을 실려 보냅니다. 김동환(1901.9.271958. 함경북도 경성 출생, 1924년 데뷔, 1950년 납북)님은 봄이 되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진달래와 보리밀 그리고 따뜻한 남풍을 느끼면서 산 넘어 남촌에는이란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가 노래가 되어 가수 박재란님이 불러 한창 히트할 때 나는 청년으로 그 노래와 가사를 아주 뚜렷하지는 않지만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은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가진들 들려 안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그리 고울까.

!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떼

버들 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가진들 실어 안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해마다 찾아오는 봄바람은 진달래 향수와 보리와 밀 익은 냄새로 청소년 시절 추억을 떠올려 여린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마음을 뒤 흔들어 놓습니다. 이러한 섬세한 마음과 느낌을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예술로 탄생시키는 재능을 주신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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