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부산 문화마을 여행기

산애고 2025. 2. 5. 06:00

 

2025.01.16.() 전주 등고산악회의 부산 비석감천문화마을 투어에 참가하여 11시경부터 부산 아미동 아미초등학교 앞에서 비석문화마을 탐방을 시작하였다.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들어선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마을로 부산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인 장례는 화장하여 묘지를 만들기에 아미동 지금의 천주교아파트 위치에 화장장을 만들었고, 자연히 부산의 일본인 망자는 아미동의 공동묘지에 모여들었다.

6.25 전쟁으로 전국에서 온 피난민들로 부산 중심부에 더 이상 집 지을 자리가 부족하였고, 결국 피난민들이 영 꺼림칙해도 궁여지책으로 비어 있는 묘지가 들어선 땅에 집을 짓고 마을을 꾸렸다.

당연히 많은 인구를 수용하려고 만든 동네가 아니다보니 인프라도 많이 열악했으나 다만, 딱 하나 좋은 건 외곽동네치곤 도로가 잘 깔려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장례를 치르려면 부산 다른 데서 여기로 와야 했기 때문에 일제가 도로는 괜찮게 깔아놨다고 한다. 그래서 가난한 피난민들은 여기서 살면서 아래쪽 원도심 중심가에서 일하는 식으로 살았다고 한다.

여기에 터전을 잡은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당장 굶어죽거나 얼어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고 하며 일본인 공동묘지의 비석이 계단, 담장, 주춧돌 등으로 사용된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하여 한국전쟁기에 피란 수도, 부산의 유적이 되었다.

우리는 조그만 집들이 비탈에 다닥다닥 붙어있고 두 사람이 함께 올라가기 힘든 계단을 올라가니 나중에는 겨우 한 사람이 통과 할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통과하여 천마산로의 아미문화학습관과 옹벽 벽화와 옛날 사진들(1960~1980)을 보며 아미로로 접어들었다.

아미비석문화마을안내센터 옆 담장 위에 교복 입은 남녀 학생 동상 옆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고 도로 옹벽에 만들어진 고무줄놀이, 말타기 등 타일벽화가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으로 인도하였다. 벽화를 지나 피란생활박물관이 된 집들 사이로 걸어가며 그 당시 생활상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감천문화마을로 접어들자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부산 감천마을은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과 태극도(대순진리회)의 신도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맨 땅에 주민 스스로 집을 짓고 소규모 마을을 이루었고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부산의 평지들이 시가지로 가득 차 결국 어쩔 수 없이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던 산비탈까지 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인구의 평균 연령은 이미 50대 중반에 진입했다고 하며 상당수가 노인의 부양가족들 또는 저소득층이라고 한다.

부산시에서는 기존 재개발 방식을 포기하는 대신 소위 보존형 재개발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였고 괜찮은 경치와 분위기가 여러 입소문을 타고 감천2동이 점차 관광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감천문화마을은 2019년에 연간 방문객 200만 명 이상, 이 중 외국인 관광객 60% 이상일 정도로 유명 관광지로 성장했으나 해당 마을의 주민들은 관광객들의 방문을 별로 달가워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산비탈 급경사에 따닥따닥 집들이 지어져 있고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기 힘든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연결된 마을, 그야말로 달동네이었고 지금도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살고 계셨다.

감천문화마을 까페와 여러 기념품 가게와 먹거리 가게들을 지나 골목길 계단을 올라 하늘마루전망대에 올라서자 한국의 마추픽추, 산토리니감천문화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조그마한 집들이 계단식으로 이어져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으며 파스텔톤의 색채,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 이어지는 풍경이 인접의 아파트들과 다르게 다가왔다.

세월은 흐르지만 추억은 남으며 누구나 지나간 추억은 그리워한다.

사람 사는 삶 속에 배고픔, 눈물, 슬픔, 기쁨, 인정, 애환 등이 서려있는 고단하고 서러운 피란민들의 이야기가 있는 흔적의 비석감천마을이 각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파트문화에서 찾아보지 못하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이어서 천마산을 오르며 부산항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서보니 영도섬과 부산시가지, 남항, 남항대교, 영도대교, 부산대교, 부산항대교와 거대한 화물선들이 부산항 입항을 기다리며 정박한 풍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장관이었다.

천마산(326m) 정상의 돌탑에 서니 석성봉수대(세종 7년 이전부터 있어 온 것) 안내판이 있었고 천마산조각공원을 거쳐 누리바라기전망대, 천마수직엘리베이터, 계단식연립주택을 거쳐 경사형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천마하늘길 관광을 한 신기한 기분이었다.

세 시간 동안 골목과 계단 등을 걸었다. 산비탈 달동네 힘들었던 시대의 옛날 건물들이 오늘의 관광지가 되도록 지혜를 모으고 리모델링으로 수고하신 관계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금도 가난한 이웃들은 산비탈 달동네에서 살아간다.

주변의 환경과 몸은 힘들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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