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가을 수상

산애고 2022. 12. 13. 06:00

가을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천고마비(天高馬肥)입니다. 파란 하늘은 높아만 가고 말은 더욱 살쪄 갑니다. 아니, 파란 하늘 빛이 너무 선명하여 하늘을 쳐다볼 때면 원더풀 원더풀 감탄사를 연발하여도 가슴이 찡하고 성이 차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보이는 오곡백과(五穀百果)는 통통 살이 찌고 풍만하여 농부의 추수(秋收)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농사 짓지 않은 범인(凡人)도 들판을 바라보면 괜히 부자가 된 듯 마음이 풍요롭게 느껴집니다. 농부가 바라보는 들판은 감회가 더욱 새롭고 가슴이 뭉클거릴 것 같습니다. 가뭄과 장마, 뙤약볕과 병해충, 기다림과 기대 등이 지난날들을 애태우게 하였지만, 열매 맺은 곡식과 과일은 내일의 즐거움과 기쁨일 것입니다.

 

자연(自然)은 인간의 교사(敎師)입니다. 특히, 가을 자연은 인간을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게 합니다. 사실 만물(萬物)의 결실은 햇빛과 비 없이는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게 합니다. 적당한 햇빛과 비 그리고 주변 환경은 생명과 결실의 터전이요, 모체(母體)이며 기본이 됩니다. 비 오는 날이 많으면, 곡식은 냉해(冷害)에 시달리고 병()에 시달려 쭉정이만 많은 열매가 됩니다. 과일은 단 맛이 없고 덤덤하며 저장성이 떨어져 곧 부패하여집니다. 결실의 가장 중요한 핵심(核心)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 것, 은총입니다. 사람이 흘리는 땀방울은 단지 미미(微微)하다는 것을 압니다. 착한 사람은 이것을 알기에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절(季節)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눈앞만 보는 속 좁은 인간(人間)은 더위와 추위에 천방지축(天方地軸) 입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몇 백 년 또는 몇 십 년 만의 더위, 추위, 강우 등이라고 마구 지껄여댑니다. 사실 견디기 힘든 폭염(暴炎)과 추위에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끼지만, 인내(忍耐)하고 기다리면 어느 사이엔가 시원한 소슬바람이 아니면 따뜻한 바람이 피부를 노크합니다.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주관(主管)하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 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절기(節氣) 따라 온갖 미물(微物)을 명령하십니다. 매미소리가 귀에 따갑게 들리는가 싶더니만, 귀뚜라미 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고요를 울립니다. 어느 사이엔가 풀과 나뭇잎에 이슬이 내려 보석(寶石)처럼 영롱하게 빛났는데, 어느 덧 차가운 이슬로 바뀝니다. 이제는 찬 서리로 호박잎과 고구마 잎을 가마솥에 삶아 놓은 듯 만듭니다.

 

지혜(智慧)가 찾아오는 가을입니다. 따가운 햇볕과 천둥 번개 가운데서도 알찬 영양(營養)을 열매와 뿌리에 저장하고, 나무는 침묵하며 기도하는 때를 위하여 찬란한 의상(衣裳)으로 갈아입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표현하고 만들어 내지 못하는 고운 단풍(丹楓)이 온 누리를 환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단풍 구경을 하려고 자연을 찾습니다. 현란한 풍경을 오래 간직하려고 사진을 찍고, 시와 글을 쓰고, 음악으로 남겨 둡니다. 그러나 현상(現像)만 보고 지혜가 주는 교훈(敎訓)과 지도(指導)를 깨닫지 못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고, 이때들은 지나가는 한 경점(更點)과 같습니다. 나무는 살기 위하여 죽습니다. 이것이 순명입니다. 아름다운 한 순간 뒤에 침묵(沈黙) 속으로 나갑니다. 나뭇잎을 모두 떨구고 하늘 향해 팔 벌리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아름답게 쓰임 받으려고 한다면 그 지혜를 가을에게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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