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가로수 소감

산애고 2022. 12. 27. 06:00

 

우리나라 거리거리에는 길을 따라 줄지어 심어놓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일명 가로수(街路樹)입니다. 남쪽지방 순천에는 후박나무 가로수가 있습니다. 겨울에는 동해(凍害)를 입어 말라죽은 가지가 생기지만, 그래도 상록활엽수로써 항상 싱싱하고 푸른 기상으로 의연한 자태를 지키면서 보는 이의 마음에 생명의 싱그러운 감흥(感興)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여러 해 전에 진도섬 가로수 후박나무에서 보았던 느낌은 잊을 수 없습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초록색 잎마다 마치 코팅 약을 발라놓은 것처럼 반짝였고 싱싱한 건강미를 발산하는 후박나무 잎의 건강한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보았던 제주도 가로수 먼나무는 난대(暖帶) 상록활엽수로써 빨간 열매가 아름다워 조경적 가치(價値)가 돋보였을 뿐만 아니라, 관광지다운 탁월한 선택(選擇)으로 여겨졌습니다.

 

경부고속국도 청주IC를 빠져나와 청주시내로 들어가는 도로(道路)는 플라타너스(버즘나무) 아름드리 가로수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도시미를 풍기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면, 환영하는 군인이 도열하여 영접(迎接)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980년 초 충북 영동은 이미, 감나무 가로수가 조성(造成)되어 거리마다 탐스런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주홍색으로 익어가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그 도시민의 인심(仁心)이 넉넉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남 담양에는 메타세콰이어가 가로수로 심어진 도로가 있습니다. 담양에서 순창 가는 외곽 도로는 늘씬하고 빼어난 이 나무가 철따라 옷을 갈아입고 왕래하는 탐방객(探訪客)을 맞아줍니다. 겨울이 지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봄 연두 빛 잎사귀로 설레는 마음을 주기도 하며 또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단풍 든 잎사귀는 예술과 멋의 산실(産室)이 되기도 합니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진 거리는 노란 단풍(丹楓)으로 도시민의 각박한 마음을 탄성과 즐거움으로 변화시킵니다. 일과 생활에 지친 마음들을 다독여 줍니다. 낙엽 쌓인 거리 위를 걷고 싶어 하게 만들고, 잊었던 시흥(詩興)을 불러일으킵니다. 서울 국립산림과학원 출입문을 지나 원내로 들어가는 도로 양쪽의 아름드리 은행나무가로수가 노랗게 물든 잎으로 시야(視野)를 어지럽히던 때가 생각납니다. 옛 산림청이 자리 잡고 있어서 출퇴근 때마다 시인이 되었던 일이 그리워집니다. 두툼히 쌓인 노란 은행잎 위를 걸으면 행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즈음은 느티나무 가로수가 많이 심어졌습니다. 무르익은 가을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는 첨병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잎사귀들. 이 세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채색으로 단장한 모습이 거리를 지나칠 때마다 감탄(感歎)을 자아내게 합니다.

 

내가 사는 전주 송천동은 중국단풍이 가로수입니다. 중국이 원산지이나 강한 생명력으로 버티면서 빨간 단풍잎을 달고서 바람 따라 도리질하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수줍은 처녀의 부끄러움 표시(表示) 같습니다. 괜히 걷고 싶은 충동(衝動)을 느낍니다. 삭막한 겨울이 오기 전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고 싶습니다. 무주 구천동 국립공원 입구지역은 층층나무로 가로수를 심었습니다. 나무 수형이 층을 형성하여 아름답게 수형을 이루기에 관광지의 특성(特性)을 살리려 한 것 같습니다. 경남 진해를 비롯하여 수많은 도시는 벚나무 가로수가 봄이 되면 하얀 꽃과 달콤한 향내로 황홀(恍惚)합니다. 꽃을 보러오는 관광 상품이 되었습니다. 또 이팝나무 가로수도 있습니다. 봄 되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얀 쌀밥처럼 꽃을 피웁니다.

 

가로수는 저마다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 잎이나 아름다운 열매, 수형, 화려한 꽃 등을 가지고 있어서 찾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계절용, 봄 구경용, 가을 구경용 등으로 구분(區分)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나무 연령이 작아 거목으로 존재(存在)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외국처럼 거목의 가로수가 존재하는 유명한 가로수 거리로 남아있기를 바래봅니다. 프랑스 몽마르트의 마로니에(칠엽수) 거리는 유행가에도 불리어지고 있습니다.(“지금도 마로니에는 ”/박건) 우리나라는 빈약 하지만 그래도 옛 서울대 자리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이 있어 다행입니다. 젊은이의 대화 장소와 연극 등 문화공연 등의 긍정적 장소로 발전하여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전국 도로변 각지에 흩어져 심어진 가로수를 기억(記憶)해 보았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꼈던 가로수만도 12종류나 됩니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 가운데 분주(奔走)한 일상생활과 일로 억압받고 스트레스 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가로수입니다. 사시사철 색다른 의상(衣裳)으로 창조주가 베푸신 생명의 경외감과 신비함을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예술(藝術)의 감흥과 문화의 산실이 되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명품(名品) 같은 가로수 거리가 전국에 산재하여 탐방하는 즐거움과 노래하는 명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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