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오복에 관한 관점

산애고 2021. 2. 21. 19:40

 

오복(五福)은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다섯 가지 기준(基準)을 가리키는 말로 예전에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첫째로 수()를 들고 있습니다. 즉 천수(天壽)를 말하며, 살아서 하늘이 주신 생명의 시간을 다 누리는 것을 뜻한다고 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부()를 말합니다. 남에게 손해주지 않으며 또 남을 괴롭히지 않고 불편하지 않을 만큼 재물을 소유한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강녕(康寧)으로 이는 육체적 건강과 마음의 건강 즉 평안한 마음을 뜻한다고 보겠습니다.

넷째는 유호덕(攸好德)으로 남에게 선을 베푸는 것을 좋아해서 선행으로 덕을 쌓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으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60대 이후에 해당된다는 신오복(新五福)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첫째는 건강(健康)입니다. 아무리 재물이 있고 오래 오래 산다고 하더라도 건강하지 않으면, 하루 살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울 수 있어 건강이 첫째 자리에 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집니다.

둘째는 부부(夫婦) 금실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아 있음이 복이라 여겨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 자명해집니다. 자녀들은 나이가 차면 제각기 삶을 찾아 부모 품을 떠나고 나면 정말 부부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부부 사이가 좋으면 참 행복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셋째는 경제적(經濟的) 안정(安定)입니다. 먹고 살기에 어려움이 없으며 필요할 때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여유(餘裕)가 필요합니다.

넷째는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돈 버는 일만이 아닌 취미(趣味)나 봉사(奉事)나 새로운 배움 등으로 나태하지 않고 생활리듬이 있으며, 삶의 보람을 느끼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섯째는 붕우(朋友)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서로 대화하며 알아주는 참된 친구가 필요합니다. 나이 들어 갈수록 친구의 소중함이 느껴집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오복의 상위 자리는 살아 있음과 소유에 초점이 맞추어 있고, 신오복의 상위 자리는 건강과 부부금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소유(所有)의 개념에서 부부(夫婦)의 개념으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부가 건강하면 물질도 행복도 가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지혜(智慧)는 놀랍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인간에게 허락하신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 부부이며 사람이 생각했던 오복의 첫째자리임을 깨달으며 하나님께 감사(感謝)드립니다.

 

성경의 오복은 무엇일까? 살펴보니 시편1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첫째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꾀는 일을 잘 꾸며내는 묘한 생각이나 수단입니다.

삼국지 소설은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으며 꾀 많은 제갈량의 활약이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 위주의 꾀가 악을 저지르는 수단이 된다면 따르지 않는 것이 복이라 하십니다.

둘째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죄 짓는 방법에 동의하지 않고 행동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복이라 하십니다.

경제가 물질이 우선시 되는 배금주의를 멀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셋째는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합니다. 건방지고 거만한 위치 즉, 하나님을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는 교만한 자리에 있지 않는 것이 복이라 하십니다.

넷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다윗이 고백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119:105) 삶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입니다. 묵묵히 마음속으로 생각하려면 늘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여 조용히 되새김하여 보거나 작은 소리로 읊조려 봅니다.

(방법), (행동), 자리(위치)는 삶에 여정에 꼭 필요하나 죄 짓는 데서 멀어져야 하고 대신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라 하십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을 바랍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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