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信賴)란 말은 국어사전에서 “굳게 믿고 의지함”이라고 그 뜻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숭실대학교 철학교수로 재직하셨던 안병욱 교수는 신뢰에 대하여 “신뢰의 상실, 이것이 곧 인간의 위기의 징조다”라고 그의 저서 「사색인의 향연」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인간사회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가정(家庭)에서는 부모가 자녀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하여 부모의 기쁨이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반하여 자녀들은 부모님이 그들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이요 가장 가까이 신뢰하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 기대하는 신뢰의 바탕 속에서 좋은 인격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이 어릴 때의 친구들은 그냥 어울려서 사이좋게 놀이하는 가운데 우정을 쌓아가지만, 개인의 인격이 완성하여 가는 나이가 되면서는 상대방의 사람됨에 따라 사귀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하며 존경하기도 합니다.
즉,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건물이 지어진다고 봅니다.
어느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많은 사람이 여러 곳에 구멍이 나거나 허물어진 신뢰의 모습도 있을 것이고, 단단하고 튼튼한 모습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객관성만 갖춘다면 말입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만남과 부딪치는 빈도에 따라 상대방의 인격이 고스란히 신뢰의 벽돌이 되어 그 사람의 형태가 지어진다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약속 지키기, 돈 거래, 실수할 때의 반응, 상대방의 배려와 이해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이 “그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아니면 그 사람은 신용(信用)할 수 있는 사람이다” 등의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개인의 주관적 관점을 배제한다면 일반 사회생활의 객관적(客觀的)이고 통상적(通常的)인 방법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신뢰는 믿음이란 모습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란 찬송가 가사는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천지는 변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절대자임을 성도들은 믿고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은 신앙생활(信仰生活)입니다.
즉, 신앙(信仰)과 삶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원론적인 신앙을 목표로 살아가는 성도는 점점 바른 신앙생활로 나아갈 수 있지만, 이원론적인 신앙생활(신앙과 생활을 분리하여 살아감)을 하는 사람은 바른 신앙에 설 수 없습니다.
학창시절을 뒤돌아보면 진실한 신앙을 추구하던 사람은 나이와 경륜이 늘어감에 따라 지금은 지교회의 중직자로 섬기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동창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신뢰가 주는 사람에 대한 중요성은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라는 이야기와 “인재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기업”이나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일을 하므로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도 신뢰할 수 있는 종을 택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이러한 택함 받은 종이 되도록 또 끝까지 하나님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겠다고 재차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