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눈 맞춤의 시간들

산애고 2021. 1. 14. 20:24

1970년대 하반기 여름 덕유산에서 안성으로 넘어가면서 보았던 노랗게 핀 원추리 군락지는 멋지고 아름다운 꽃동산이었음을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전주 여러 산악회에서 이 맘 때면 덕유산국립공원 무룡산 원추리 산행 계획이 발표되어 어떤 산악회를 따라 갈까? 망 서렸습니다.

결국 화요일 등산하는 나마스테산악회에 동행하기로 하고 산행이사에게 카톡으로 산행 신청을 하여 10번 좌석을 배정 받았습니다.

산악회 버스는 거주하는 송천신일아파트를 거쳐 가고 있기에 약속한 시간에 타고서 거창군 북상면 황점리 산행 들머리에 도착하였습니다.

황점마을은 첩첩산중 산촌마을로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마을빨래터를 만들어 놓아서 정겹게 보였습니다.

등산로 계곡은 삿갓봉 골짜기에서 풍부한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가면서 수많은 폭포와 쏘를 이루고 아름다운 풍경과 귓전을 울리는 시원한 물소리를 선사하였습니다.

숲은 울창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고 시원하였으나 습도가 많고 여름 폭염이 최고로 맹위를 떨치는 대서(大暑)여서 그런지 땀이 온몸을 흠뻑 적신 가운데 눈으로 계속 땀방울이 들어가 조금 산행하다 땀을 닦아내기에 바빴습니다.

산행 시작한지 120, 해발 1,200m가 넘어가는 삿갓샘을 지나 삿갓재 이정표를 만나고 그 옆 쉼터 삿갓재대피소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부터는 무룡산,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피소를 벗어나자마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각시원추리가 환한 미소로 맞아줍니다. 6개의 노란 꽃잎 속에 6개의 수술대와 한 개의 암술대조차도 노란색이며 수술머리는 밤색에 가깝습니다.

이 세상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곱고 청순하며 아름다운 자태에 마음을 뺏기고 그 옆을 보니 보라색 꽃망울을 부풀린 비비추가 수줍게 맞아줍니다.

바위 위 유기물이 쌓인 곳에 자리를 잡은 구절초, 기린초가 아직 꽃망울을 부풀리지 못하였지만 건강한 초록색 잎을 나풀거립니다. 생명은 환경이 좋은 곳만 있지 않고 척박한 곳에서도 하늘을 향해 사명을 다하고 있음에 존경을 표하여 봅니다.

뒤 돌아보면 삿갓봉과 남덕유산 정상은 물기 머금은 구름이 오락가락 합니다.

 

이어서 나타나는 말나리에 눈 맞춤을 합니다. 노랗고 붉은 바탕의 6개 꽃잎에 붉은 점이 촘촘히 박혀있고 한 가운데 암술머리를 중심으로 6개의 빨간 수술머리가 물방울을 달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조금 전 구름이 머물다 간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 색이 그리 고울 수 없습니다.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조물주의 작품입니다.

 

등산로 숲 그늘 밑에 부끄럽게 맞아주는 모싯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80cm 키에 서로 어긋나게 잎이 붙어있고 잎이 있는 곳마다 어김없이 새끼손가락 길이의 꽃대가 보통 2개씩 나와 보라색 꽃을 피운 꽃도 있고 아직, 꽃 봉우리로 달려 있기도 합니다.

활짝 핀 5개 꽃잎은 수줍어서 땅을 바라다보지만 곱디 고운 꽃 색에 정신 뺏겨 잠시 눈을 맞추었습니다.

 

수풀 가운데 가지런한 주홍빛 5개 꽃잎으로 환한 웃음을 웃어대는 동자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너털웃음이 연상되는 꽃잎 가운데는 하얀 테두리가 있고 하얀 수술이 4개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하얀 머리카락처럼 무수한 흰 꽃잎이 덩어리처럼 피어있는 꿩의다리, 바람개비처럼 노란 꽃잎 4장을 활짝 피고 무수한 붉은 수술머리를 간직한 큰물레나물, 보라색 꽃잎을 나풀거리는 창포에도 눈 맞춤을 하였습니다.

 

탐방로 길마다 무수하게 자란 까치수염은 하얀 꽃잎을 피운 채 한 뼘 길이의 꽃 뭉치를 들고서 바람과 놀고 있습니다.

노란날개에 점박이 나비와 짙은 청색의 날개를 나풀거리는 나비가 까치수염 꽃잎에 앉아 꿀을 빨고 있습니다.

참 한가롭고 자유스러운 산 능선입니다.

키 작은 나무가 고산 능선에 자라고 그 밑에는 수많은 야생화가 자라며 여러 종류의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천상의 화원입니다.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조건과 항상 구름이 넘나들며 목마른 목을 추겨줄 수 있는 고지대 풀밭 능선은 야생화가 잘 살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각종 나비와 새들도 이러한 곳이 좋은가 봅니다. 눈에 많이 띄고 소리도 많이 들리는 것으로 그렇게 추정하여 봅니다.

먼 산행 거리와 올라가고 내려가는 수고에 힘은 들었으나 아직 이름도 파악하지 못한 여러 야생화와 눈에 익은 야생화를 만나 눈 맞춤한 시간들이 행복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면서 하나님의 숨결과 경륜을 보았습니다.

주님 주신 아름다운 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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