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찬양대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산애고 2022. 7. 6. 06:00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오스트리아 로라우에서 출생하여 빈에서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목수였고 어머니는 결혼 전 마을 지주의 요리사였다. 하이든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부모는 그의 교육에 고심했다. 사촌이자 근처 마을인 하인부르크의 학교 교장이며 성가대 지휘자이던 요한 마티아스 프랑크가 하이든을 자신의 집에 두고 교육시켰다.

 

장크트슈테판 대성당의 성가대 단원으로 기숙하면서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당대 성공적인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성악 선생이던 니콜로 포르포라의 눈에 들게 되어 그를 성악 레슨의 반주자로 채용했고 개인 비서 일을 시켰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작품을 교정해주었다. 인내와 노력으로 그의 실력은 나날이 늘었고, 마침내 그는 귀족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며, 이들에 의해 오스트리아의 귀족이자 음악 애호가인 카를 요제프 폰 퓌른베르크에 소개되었다. 하이든은 이 귀족의 저택에서 악기 연주자로서 주로 실내악을 연주했다. 이곳에서 쓴 초기 현악 4중주들을 시작으로 그는 일생 동안 80여 곡의 현악 4중주를 작곡하면서 이 음악형식을 발전시켰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악단의 부감독을 거쳐 에스테르하지의 궁정에서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거의 30년간 일했다. 모차르트는 하이든보다 24세나 어렸지만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시작되었고, 곧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 헨델, 베토벤 등 많은 음악가들과의 교류가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1791년 하이든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에서 열린 헨델 추모음악회에 참석하고는 헨델의 위대한 오라토리오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후 그는 독일어 가사에 의한 천지창조작곡(3년 걸림)을 통해서 신에 대한 하이든의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고 음악을 통해 그를 그토록 기쁘게 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그는 매일 같이 무릎을 끓고 나에게 힘을 주소서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후 천지창조 The Creation, 3부로 구성는 계속해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연주되었고 또 다른 오라토리오 사계 The Seasons, 1797년에는 오스트리아를 위해 감동적인 노래 신이여 황제 프란츠를 보호하소서 Gott erhalte Franz den Kaiser작곡, 놀람교향곡 등 106곡의 교향곡, 68곡의 현악4중주곡 등 작곡으로 고전 시대 기악곡의 전형을 만들었으며 특히 제1악장에서 소나타 형식을 완성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808년 그의 76회 생일을 기념하는 빈 축하 연주회에서는 명연주자들에 의해 천지창조가 연주되었고, 병들어 누워 있던 하이든이 직접 참석했다. 그는 팔걸이의자에 앉은 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연주회장에 들어와 귀족들이 앉는 곳에 함께 앉았다. 그를 기념하는 시가 낭송되었고, 박수갈채가 연주회장을 뒤흔들었다. 그가 자리를 떠나려 하자 왕년의 제자 베토벤이 무릎을 꿇고 스승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결코 자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변변찮은 재능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겼으며주님의 이름으로라고 쓴 후에 작곡에 들어갔으며, 작곡이 끝난 후 악보 끝에 하나님께 영광을이라고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이든

 

▶ 하이든 작곡 성가곡/ '크고 영화로우시다' 악보

 

▶ '크고 영화로우시다' 노래/ 서울모테트합창단(정치용 지휘) 듣기

The Lord is great and manifest (F. J. Haydn).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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