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찬송에 대한 소고

산애고 2020. 11. 29. 18:10

 

찬송(讚頌)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미의 제사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백성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찬송은 황소를 드림보다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물입니다. 찬송은 예배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이며 예배 그 자체입니다.

 

중세 이전의 찬송은 단선율 찬송이었습니다. 이 음악은 육성, 자연 음성의 절제에 중점을 두고 있어 은은 하면서도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멜로디는 어떤 비약이나 박력감을 주기위한 도약이 없습니다. 선율과 운율이 부드러우며 신앙적인 표현이 되어 음악이 예배하는 영혼의 언어가 됩니다. 엄숙하고 경건하며 조용한 가운데 영혼의 호소가 가득합니다.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 문화의 흐름에 따라 본격적인 다선율 찬송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아름다운 화성음악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악기편성도 화려하게 발전되었습니다.

현대교회의 교회음악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현대문화가 퓨전문화로 발전되어 정신적 혼란으로 다가옵니다. 문화란 옷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생각하지만 시대에 너무 뒤떨어진 옷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사람들의 화려하고 기교 있는 찬송일지라도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실 수도 있고, 사람이 보기에는 별 볼일 없어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송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마음으로, 누구를 향하여, 어떻게 드리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고전성가만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현대의 CCM이나 워쉽 찬송만 하나님이 받으신다고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각자의 역할(役割)이 틀리다는 것을 우선 말하고 싶습니다.

예배찬송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릴 찬송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찬송, 하나님의 속성과 위대하심을 노래하는 찬송으로 경건하고 아름답고 장엄한 찬송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 집회나 기도 모임이면 거기에 맞는 복음찬송이나 워쉽 찬송이 있으리라 봅니다. 목적에 맞는 찬송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분별하여 경우에 합당한 찬송을 선곡하고 지도할 수 있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입니다. 문화의 홍수, 찬송의 홍수 가운데 나는 올바른 찬송생활을 하고 있나 생각해 볼 때입니다.

찬송은 입술의 열매입니다. 기쁨과 감사가 내 영혼에 넘치고 주님의 평강이 흐르는가? 자신의 육성으로 드려지는 찬송이 찬미의 예물 됨을 느끼고 있는가? 자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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