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茶山草堂 사적 제107호)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는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다산 정약용의 18년간 유배 생활(1801년 신유사옥: 천주교도 박해사건과 황사영백서사건: 천주교 지도자 밀서 연루)을 하던 주택(초당)이다. 이곳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600여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조선시대 성리학의 공리 공론적이며 관념론적인 학풍을 실용적인 과학사상으로 이끌 고자 하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직접 병풍바위에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