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단상

빠름과 느림

산애고 2025. 10. 1. 06:00

 

현대사회는 초고속으로 질주하면서 디지털전자문명 시대를 열어가고 있어서 빠름의 문명과 문화가 삶에 깊숙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수년 전, 거주하는 아파트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잠그곤 하였는데 아들이 디지털키를 달아주어 숫자와 특수문자를 조합한 비밀번호를 눌러서 출입하고 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새로 교체할 때에 공사기간 3주 동안 12층을 걸어서 오르내리는 일은 무척 힘들었지만, 매 층마다 거쳐야 하였고 집집마다 현관문이 디지털키로 장착되었음을 보았다.

가정에 필요한 식재료와 소비품을 사려고 자동차를 가지고 집 앞 대형마트로 가서 사가지고 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배달을 시키기도 한다. 이때 배달시킨 물품이 빨리 와야 기분이 좋다. 이미 빠름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는 증거이다.

이제는 쿠팡으로 물건을 시킬 때가 많다.

쿠팡은 핸드폰 앱을 통해 주문하고 결재하면 반나절이나 아니면 한나절이면 현관문에 배달이 되기에 그 빠른 배송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새벽기도 가려고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면 쿠팡 택배기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부지런히 물품을 배송하는 것을 자주 본다.

어느덧 빠름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가고 있음에 화들짝 놀란다.

초등학교 다니는 손주들이 영어, 수학 등 전문학원에 두 과목 수강하는 것을 보면서 경쟁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가운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는 것도 일찍 시작하고 피나게 경쟁하여야 낙오하지 않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학업, 진학, 취업, 승진 등 사회전반에 빠른 속도로 가는 것이 목표가 되었지만 결혼, 출생 등은 느려지거나 아예 결혼포기, 출산포기 등의 현상이 미래를 어둡게 한다.

느림은 생명과 평화의 시간이며 기다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초고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을 제어할 대안적인 삶, 즉 자연친화적이며, 인간다운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인간은 시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다.

시간과 돈이 강하게 결합된 사회에서 시간에서 자유로움을 누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속도가 빠른 시간일수록 더 많은 돈을 번다. 초고속 열차의 운영이나 초고속 광케이블의 설치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이윤추구로도 이어져 있다. 전달의 속도, 이동의 속도가 더 빠를수록 더 많은 돈을 버는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속도에 떠밀려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현대인은 고독할 시간조차 없어 보인다.

이 고립은 우리에게 우울을 낳으며 자살을 불러오기도 한다. 오늘날 도시가 병들어가는 것도 우리가 시간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에 노예가 될수록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우리가 시간을 통해 살아야지 시간이 우리를 살게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을 늦추면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리면 옆을 볼 여유가 없지만, 뚜벅뚜벅 걸으면 풍경이 오감 속으로 다가오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 설렘, 기다림, 이완의 시간은 느림에서 얻을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게 다스리라고 하셨다.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빠름과 느림 즉, 시간을 다스려야 한다.

폭염이 늦게까지 계속되나 풀숲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의 청아한 노래는 어김없이 때를 맞춘다. 만물은 때를 알고 지킨다.

피조물 인간도 빠름과 느림을 다스려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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