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

고통을 딛고 일어선 '악성(음악의 성자)' 베토벤

산애고 2022. 8. 3. 06:00

르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 Ludwig van Beethoven)17701217일 요한 판 베토벤과 마리아 마크달레나 판 베토벤 사이에서 태어나(할아버지 궁정악장, 아버지 궁정 테너가수) 독일 북서부 본에서 세례를 받았고 결혼하지 않고 지내다 1827. 3. 26 오스트리아 빈에서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베토벤은 11세 되던 해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고, 18세에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작센 출신의 개신교도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가 본 지방의 궁정 오르간 연주자로 임명되었는데 후일 베토벤의 스승이 된 그는 음악가로서는 다소 한계가 있었지만 높은 이상과 폭넓은 교양의 소유자였고 문필가로 가곡과 경가극을 여러 편 남겼다. 1783년 베토벤은 네페의 도움을 받아 현존하는 최초의 작품인 드레슬러에 의한 행진곡 주제에 의한 변주곡 Variations on March by Dressler을 만하임에서 출판했으며 17826월 베토벤은 네페의 보조 연주자가 되었다. 1783년 본 오페라단에서 계속 저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로 임명되었고, 1787년에는 1784년 이래로 대주교 선제후로 있었던 막시밀리안 프란츠의 후원을 받아 빈으로 가 모차르트에게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의 즉흥연주 솜씨에 대단히 감명을 받았고, 친구들에게 "이 젊은이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790년 런던 여행길에 본에 들른 하이든에게 주목받아 베토벤은 그의 제자가 된다.

 

베토벤의 음악세계는 하이든·모차르트의 고전주의 전통에 입각했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열정적으로 부르짖던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좇았으며 베토벤은 이전의 어떤 작곡가들보다도 생생하게 삶의 철학을 대사 없는 음악으로만 표현해 음악의 위력을 드러냈다. 그는 낭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를 따르는 여러 낭만주의자들의 작품들에 대해 사고의 원천이 되었다. 음악 형식에서도 위대한 혁신가이었던 베토벤은 소나타·교향곡·협주곡·현악4중주 등의 영역을 확대했고, 교향곡 9번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성악과 기악을 한데 결합시켰다. 그는 대부분 악기를 다룰 줄 알았으며 각 악기의 특성을 잘 알았고 특히 청력을 상실하기 전에 베토벤은 당대의 뛰어난 비르투오조 피아노 연주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병든 귀에 대한 영웅적인 투쟁으로 점철되었고, 중요작품들 중 일부는 그가 완전히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마지막 10년간 작곡된 것이었다. 궁정과 교회의 후원이 사라진 때에 살았던 베토벤은 악보 출판과 작곡료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내적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데만 관심을 가진 최초의 직업적인 음악가였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피아노 소나타 8비창〉‧14월광〉‧23열정〉‧26고별, 교향곡 3영웅〉‧5운명〉‧6전원〉‧9합창, 장엄 미사 Missa Solemnis, 33개의 변주로 된 디아벨리 변주곡등이 있으며 9번 교향곡은 대규모 작품으로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그는 평생 작곡 메모 수첩을 갖고 다녔으며 악상이 떠오르면 곧 바로 수첩에 적었고 자신의 의도에 꼭 들어맞는 선율이 될 때까지 그 악상을 수십 번 수백 번씩 다듬었다고 한다. 의 가장 커다란 업적은 성악음악에 대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 기악음악을 최고의 위치로 부상시킨 데 있다.

 

베토벤

▶ '주 이름을 찬양함은'/베토벤 작곡 성가 소개

 

▶ '주 이름을 찬양함은'  성가곡 듣기

 

02 주이름을 찬양해.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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