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행복은 작고 가까운데 있다고 말한다.
현대의 빠르고 복잡한 생활 가운데 큰 성취나 거대한 목표 대신 작은 순간들에서 얻는 기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으로 ‘소확행’이 널리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소확행(小確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1986년작 에세이 ‘랑게르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쓴 말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소확행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소확행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시기는 2010년대 후반으로 알려져 있다. 물질적인 풍요를 경험한 한국사회는 경쟁과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대중매체와 SNS를 통하여 소확행은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실현하는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과도한 경쟁과 급변하는 환경에서 사람들이 겪는 피로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번 아웃에 노출되기 쉬워 이를 벗어나기 위해 소확행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인 안정을 중시하는 심리와 맞물려 ‘작고 확실한 행복’이 자기 돌봄의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아침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행복감, 숲속 산책 중에 느껴지는 오감의 행복감, 오르고자 했던 산의 정상에서 느끼는 행복감, 입사시험에 합격할 때의 행복감, 배우고 싶은 악기를 타면서 노래 부를 때의 행복감, 말이 통하는 사람과 소통의 행복감 등.
그러나 감정으로 느끼는 행복감은 상황과 조건이 바뀌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며 영원하지 않다. 그러므로 소확행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행복자라 부른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죄와 허물 대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야)로 고백하며 주님으로 섬긴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복 있는 사람이라 하며, 복 있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삶을 말씀한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
그리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세상에서 말하는 형통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잘 될 때 쓰는 용어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형통이라고 하며, 그것이 비록 고난 중일지라도 형통이라고 하신다.
요셉은 자신에게 해와 달이 절하는 꿈을 꾸었고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으나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종(노예) 살이 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을 하였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나갈 때 하나님의 때가 되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요셉이 누명을 쓰고 고난 받는 감옥 생활을 성경은 형통이라 표현한다. 사람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의 삶을 살아간다면 행복은 선물로 따라오며, 근본적 행복을 누리는 삶 즉, 복된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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